12.08.2018

노란조끼 프랑스 그리고 이삿짐


요즘 이곳 프랑스는 조금 어수선하다. 오늘도 홍포앙 (rond point)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을 피어 시꺼먼연기를 품어내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번 시위자들의 여러 이야기들속에서 내가 겪었던 프랑스생활들 그리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하게된 이유들이 그들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사실 나는 늘 내가 프랑스사람이 아니기때문에 더 손해를 보는입장이란 생각을 아주 많이 해왔다. 단 한번도 프랑스인들이 그들 정부로부터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못했다. 적어도 내 친구들중에는 그런일을 겪은 사람들이 없었다. 지난 5년간 내마음안에서 프랑스사람들 문화에대한 화가 자라나고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완전 이기적인 문화, 불신, 겉으로는 미적이고 예절 엄청 중시하는데 속으로는 질투가 가득한 사회생활, 나는 자꾸만 나자신을 그들사회에서 멀리로 밀어내고있었던것같다. 그래서 더 나의 친구들은 고마왔고 소중했지만... 역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민족주의란 터무니없는 환상이라는 생각을 경험으로 확인했다. 이세상에는 좋은 사람들과 그렇지못한 사람들이 있을뿐이다.

이그림은 친구들과 마지막남은 시간을 보내며 시끌벅적한 이삿짐 속에서 그려낸 2018 마지막 드로잉이 되지않을까싶다. 내가 이번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은 루이16세때의 역사적혁명처럼 찬양적이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그중하나의 이유는 프랑스 서민들이 정말 배고픈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않는다. 그들은 예전에 누릴수있었던 혜택을 다시 원하는것이다. 프랑스에서 생활해본사람이라면 알것이다. 아주 단순한 일도 불신이 엄청나서 에너지와 시간을 쓸데없이 써야한다.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치 작은권력도 쓸수있는데까지 쓴다 싶도록 권력주의자들이다. 거의 모두가 자기권리는 중요하고 다른이의 권리는 관심없으며, 점심시간 2 시간 문닫고, 7시면 모든 가게 문닫고 여름엔 두달 가까이 놀러가고, 겨울엔 한달 가까이 놀고 관광객으로 돈은 벌지만 관광객들을 환대하지는 않고 오히려 귀챦아하는 오만함. 그 오만한 문화가 프랑스라고 느껴질때가 종종 있다.

나는 여러곳에서 옮겨다니며 살았기때문에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져있다. 여기친구들은 로리엉에 사는 마리집에서 내게 행복한 꿈을 꾸게해주던시간들속에만난 마리엘화지, 이브마리, 올리비에, 델핀그리고 폴린 과 함께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마련해주는 모임은 주말마다 이어져 난 사실 그렇게 좋은 친구도 아닌데 아직도 세네번이 남아있다. 남는건 친구들뿐인가보다. 이곳에선 한국처럼 모임을 가질때 사진을 찍는일이 드물다. 하지만 이날은 운좋게 사진이 남을수 있게되었다. 주말이 아닌데도 불과하고 모두 와주고 늦게까지 함께해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모두 다시 어디서건 만나게되기를 바란다. 로리엉은 내게있어 고향과 다를바가 없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앞으로도 계속될거라고 생각한다.  반에 이사온후 좋은친구들을 만나게해준 화브리지오 그리고 카티. 그외에도 지나간 모든 시간들속엔 늘 좋은친구들이 있어주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자리, 날위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와서 마음이 아파왔다. 헤어짐은 늘 그렇듯이.




프랑스가 세계에서 6번째 또는 7번째 GNP가 높음에도 불과하고 파리 시내는 점점 더 지저분해지는데 정부는 아무 투자도 하지않는다. 어차피 관광객들은 무조건 오니까.  도대체 그많은 돈이 어디로 가는것인지 서민들은 의아해한다. 나는 정치는 모른다. 그들의 마음도, 이익이 무조건 앞서야하는 그들 머릿속도 알고싶지않다. 하지만 이세계를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 무언가 잘못된게 있다면 정부에 맞서참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곳 서민들은 지난 수년간 예전보다 누릴수있는게 줄어드는데 화가 쌓였고 늘어나는 텍스에 좌절하고 지난 18개월동안 마크롱은 자기 자만에 빠져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결국 그는 똑똑한 혁명가 라기보다는 어리석은게 아니였을까 ?  하지만 만약 그가 대통령직을 내려간다해도 누가 어떻게 해결책을 가져올수있을까?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준다면 물론 좋지만 그런정책이 정말 가능할수있을까? 뿌리가 깊게 내려앉은 부유함의 곰팡이들... 

5분안에 노란조끼는 누구인가를 풀어내는 하론 이라는 코메디언, 나는 그의 팬인것같다. 불평많은 프랑스 사람들자체가 노란조끼라고 말한다. J'en ai marre 라는건 영어로는  I am fed up 인데 한국말로는 뭘까... 지쳤다?  이말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니 가장 즐겨쓰는 말중 하나다. 하룬은 바로 이말을 쓰는 이들이 노란조끼라고 한다. 노란조끼안에 폭력쓰는 이들이 있다는건 놀라운얘기가 아니다라며 관객들 웃음을 자아낸다. 가는길 막아서고 논리에 맞지않는 행동하는것 역시 놀랍지않은 프랑스인들의 행동이다 하면서 노란조끼에 반발하는 빨간 머플러시위 이야기도 서로의 의견이 다른점을 재미있게 끌어내면서, 만약 정말 차가 고장나서 비오는날 고속도로에서 노란조끼를 입고 밤에 서있다면 사람들이 그를 시위자로 알고 일어날일들을 상상하게하며 웃음을 준다, 그리고프라임 미니스터에게 트월크 춤 출줄 아느냐는 (최근 노르웨이 여자축구선수가 상을 받는자리에서 던져진 질문으로 여성차별로 퍼지며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에서 나온 말) 문장으로 끝낸 이 비디오를 내 블로그에 남기고싶어서 이글을 쓴다.  12월말에 한국으로 돌아가기전 이사람 공연을 꼭한번 볼수있다면 좋겠다. 그럴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보지만...

11.19.2018

France Yellow Vest 프랑스 노란조끼 집회 Vest Jaune

날이 추워지기시작한다. 지난주말 이곳에서는 노란 조끼 집회 가 있었다. 근데 이집회는 어느장소한곳에서 크게 한것이 아니고 곳곳에서 모여서 사방에서 열렸고 조금은 폭력적이기도 했다. 자동차 바퀴를 불에 태우기도했고 대치된 경찰들과 격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채소를 사가지고 돌아오다가 라운드 어바우트 (홍푸앙) 에서 길이 막혔고 천천히 빠져나가 멀리 돌고 돌아 집에 간신히 올수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어, 중국인이야. 쟤는 아무것도 이해못할거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노란조끼를 꺼내 차에 보이게 놔두라고 강요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혼자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런 공포는 새로웠다. 운전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충분히 위협적인 느낌을 가질수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인 오른쪽으로 돌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건전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의 이슈는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현실을 바꾸어보려는것과 몇달간 오른 기름값을 내려달라는 혁명같은 집회인데 내가 그속에서 느껴야했던건 왜 차가 다니는 동네길을 막아서는가 하는것이다. 내 친구들 속에도 그들이 내는 문제점에 동의 를 하는 이들이 있고 하지않는 이들이 있다. 프랑스 정세를 자세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길을 막아서서 무고한 시민들을 힘들게하는건 나로써는 아니라고본다. 무슨 공산국가 에서 있을법한 일이 아닌가..

프랑스에는 내가 정말좋아하는 사랑과 자유의 열려있는 마음이 있기도하지만 내가 정말 싫어하는 뷰로크라시 와 뼈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과 맘먹는 냉혹하고 질투심강한 마치 목욕탕에 피어오르는  tache noir 를 연상케하는 마음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수 있다. 민주항쟁이란 돈많은 지배층과 싸우는 서민층의 정의로운 이야기 이지만 이번 이슈는  다르다고 나는 느낀다. 이것이 과연 민주항쟁일까? 석유값을 내리면 안된다는 이들은 그래야 자동차를 들사용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환경보호가 가능해지기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여지껏 누려왔던 혜택들을 포기할수없다는 사람들, 경제가 안좋아지면 일하는 시간을 늘이기보다는 어떻게든 전처럼 주던거 다내놔라 하는마음. 결정을 내리지못하고, 책임은 무조건 회피하는, 절대 짤리지않는 공무원들 그리고 전처럼 살수없어 화가 잔뜩난 과격한 시민들 이모든게 이기적인 생활관습이 쌓여생겨난 결과물은 아닐까? 한 여자는 내게 그들나라의 민주주의 는 아주 오래된것이라 내가 이해할수없을거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음식을 즐기면서 별 불편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눈에 보이니까 나로써는 그들의 불만이 이해가 안가는지도. 지금 프랑스는 어디로 가고있는걸까... 물론 지금 내가 얘기하는것은 이나라의 어두운부분이다.  전세계 어디를가든 그곳에는 어둠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 어둠을 걷어내는 사람들이 살고있다. 그수효가 어느쪽이 많아지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본다. 딱한가지 분명한건 마크롱 대통이 서민들을 무시했다는점이다.

Anyways...
오늘 마을을 지나는데 내가 그렸던 이 비딱한 오래된집이 결국 무너지기직전이라 집자체를 아예 없애버렸다. 왠지 역사를 본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도 한순간에 없어지는데 이세상에 무엇이 영원할수있을까. 이제 이집을 기억하는이는 점점 없어질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나에겐 로리엉에 대한 향수가 깊다. 지금살고있는 반이라는 마을엔 부자들이 많다. 로리엉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40분 더 가야한다. 그곳사람들은 조금더 인간적이라고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그렇다해도 문화적으로 크게달라 처음엔 힘이 들었었지만 그곳은 내게 꿈을 꾸게해주었고 자연을 가르쳐주었고 온갖 바다운동을 배울수있게 해주었고 내 사슬을 풀어주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보통 파리친구들이 나를 보러오면 로리엉은 볼게 하나도 없는 못생긴 도시라고한다. 나는 정반대로 생각했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로리엉에는 역사적인 성이나 멋지고 오래된 건물이 세계2차대전때 독일에 의해 전부 파괴되었다고 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아무것도 없어서 탁트인 마을이 너무 맘에 들었었다. 근래에 새로지어진 건물들이 조금씩 들어섰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특별한 바다가 있다. 마을에서 10분거리에 라모 라는 바다다. 라모는 바로 나의 고향이다. 사실 내게는 고향이 무지 많다. 여러번 태어난사람같이 말이다. 나는 그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도 처음 배우고 윈드설핑도 처음 배웠고 보트도 처음 배웠다. 겨울에도 설핑을 했고 한밤중에 스쿠터를 타고 폭풍이 쏟아지는 해안을 달렸었다. 근데 지금와보니 내가 사진을 찍은게 하나도 없다. 그나마 몇장있던것도 지난번 컴퓨터가 고장나면서 다 날렸다. 한장 남은건 인스타에 올렸던 놀망디에서 찍힌 이사진뿐이다. 사실 난 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안에 남는것을 중요시하다보니 표면적인것을 신경쓸틈이 없었다. 단지 블로그에 올렸다면 좋았을것이다 라는 생각이 늦게 들었을뿐.
그래도 이사진이 남아 좋다... 정말 착했던 가엾은 짙은 갈색말 훌람버,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있을까... 다시는 못만나겠지...
Lorient (로리엉) Larmor (라모) Vannes (반) Normandie (놀망디) tache noir (까만 점, 곰팡이) rond point (홍푸앙) 

10.29.2018

루비통 가방이 창피했던 엄마



10년전 어머니가 내가살던곳에 오신적이있다. 그곳은 로리앙 이라는 마을이고 기차로 파리에서 3시간 10분 서쪽으로 달려와야하는 브리타니 시이다. 브리타니 는 프랑스에서 알짜배기 들이 살고 있다고 할만큼 경제적으로도 잘살고 국민의식이 높으며 자기들이 살고있는 지역에 대한 자존감이 아주 높고 자연을 사랑하는 셀틱문화가 강하게 깔려있어 허례허식 을 유독 싫어한다. 며칠 나와 산보를 다니시다가 어느날 길에서 내가 들고다니는 작은 배낭안에 본인이 들고다니던 루비통 가방을 넣어달라고하시는것이다. 그곳에서는 루비통을 들고 다니는게 너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하신것같았다. 사실 브리타니는 바다로 둘러쌓여 경치가 아름다운곳이 많아 유럽과 파리지앵들이 바캉스를 많이오는곳이다. 이곳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릴때가 많다. 자동차번호만 보고 친구들끼리 낄낄 거리며 조롱섞인 농담을 한다. 파리지앵 은 부르조아들이 많다고생각하며 그런 그들의 정신을 싫어한다는말이 더 정확하다. 나는 곧바로 그런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브리타니엔 아이들이 바다운동 말타기등등 배울수있는곳이 곳곳마다 있고, 옷이나 생활용품들이 중간가격들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선호받고, 남자들은 자기살집을 직접짓는경우가 많다. 눈에 띄는 사치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보이며 모든 생활에서 보편적으로 평등사상이 뿌리까지 깊이 스며들어있다고 느껴진다. 대신 자신들이 하고싶은일에 시간을 보내는것을 진정한 행복의 기본으로 본다....  20 만원에 6개월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수영복하나만있으면 보트건 윈드설핑이건 말타기든 운동을 배울수있다. 바다에 가서 운동할때 만나보면 사람들이 정말 예외없이 착하고 바르다. 가끔 바다운동하는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멋진영혼들이란 착각이 들정도이다. 바로 얼마전 뉴스를 보니까 한국여자들이 비싼 빽을 사는데 세계1위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상상만 할뿐 한국 사회를 정말 잘 알지는 못한다.

자기가 하고자하는일에 남의 소리를 귀기울이지않고 자기가 믿는데로 앞으로 나아가는일은 정말 어려운일이다. 가족에게선 고집불통이란소리를 듣고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과 평범한 대화를 하기도 쉽지않다. 물론 언제고 다시 내려놓은 시간안에서 웃어대면 괜챦아 보이기도하지만 실상 다른사람들과 섞일수없는 영역이 넓어지면 그영역이 강건 해질때까지 앞으로나아가기위한 변화들을 보고 받아들여야한다. 평생 변화를 겪는다는건 올바른 일이지만 아직도 매번 어렵다. 이제 내게는 정해진 시간이 내앞에서 프랑스생활안에 놓여있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모두 이곳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갈준비중이다. 이별은 늘 슬프다. 또 다른 시작, 어드벤쳐가 한국말로 뭘까? 모험이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곳이니까 들 위험한 모험이 되지않을까?





내가 찾는 자유란 생각보다 무겁고 어려운것이라는것을 알게되었다. 오토바이크를 탈때 느끼던 그 바람이 주는 스피드에서 느껴지는 자유와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나는 요즘 드로잉에서 자유를 얻어가고있다. 그것은 서서히 내게 다가오고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방법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야 나를 인도하는 그림의 선들속에서 호흡을 조절하며 그들을 느낄수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원하는곳에 다다르지못하는 나를 바라본다. 무엇인가 무거운 돌맹이가 내 무릎위에 올려져있고 나는 그것을 치우기보다 그냥 즐기고있다. 하지만 나의깊은 진심은 그 돌맹이를 치우기를 원하고있다. 깊이를 잴수없는 자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있다면, 그들과의 대화가 더오래 지속될수있다면 하며 내가 나에게 원하고있다.

날씨가 많이추워졌다. 할일은 많은데 생각들이 한곳에 앉아있지않고 여기저기 외출을 하고있다. 요즘엔 그냥 내버려둔다. 지금 시기가 시기인만큼 나도 생각하고싶은게 많겠지.






5.07.2018

문 과 김 이 만나던날










왜 그렇게 가슴이 뛰든지, 왜 그렇게 눈물이 나든지... 아버지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날 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던 그날 그들이 손잡고 넘나들던 북한땅. 나도 참 많이 가보고싶다. 나는 이제 3일후 서울에 간다. 10년만에 가게되는 고향이다. 5년은 그냥 흘렀고 나머지 5년은 문서문제로 붙잡혀있었다. 문제를 바로잡는데 횟수로 거의 5년이 걸렸다. 아ㄹ라 프랑스여.

나는 이일을 계기로 이곳 시골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망설이고 있다. 30년넘게 떠나온 고향인지라 겁은 좀난다. 하지만 나는 적응을 잘하는편이고 이모가 말해주기를 한국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자유분방하기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하다. 하지만 이곳생활이 나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수있는 환경을 주지못하므로 이곳에 더있는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지난 12년 시골에 혼자 처박혀 그린그림들을 전시도 하고 비지니스구상한것에 대한 실현도 해볼생각이다. 아무래도  큰도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도 아직 있으니까. 그동안 한번도 밖으로 나와본적없는 그림들이 내 어두운 창고에서 자고있다. 과연 내가 도시생활을 적응할수있을까? 두고볼일이지만 서울에 돌아가는일이 가슴설레인다. 외국인일 필요가 없는 삶. 서울은 중년의 여자인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







올겨울은 정말 비가 자주내렸다. 내작은 발코니에서 보이는 풍경과 내가 그림을 그리며 살고있는 스튜디오 이다.








3.20.2018

구름이 많은 브리타니

요즘 내게 파도처럼 사람들이 밀려든다. 지난 6년간 평화로운, 때론 너무 평화로운 생활에 자그맣게 시작되는 변화가 오고있다. 이변화는 내가 원하는것이기도 하고 원하지않는것이기도하다. 에고는 2원성이 있지만 참나는 일관되다. 그누구도 물결을 거스리지못한다. 변화가 다가오는것을 하나하나 느끼고 바라본다.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고있는지, 내가 원하는것을 하고있는지 매시간... 아직도 쉬운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심결을 읽은후 이미 불빛은 내앞에서 강한목소리를 내고있으니 나아갈수있다. 내정신상태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있다고 느낀다. 어디까지 갈수있는가 그건 오직 내게 달려있다.


사진의 이곳은 집에서 20분거리에 있는 살조 (Sarzeau) 라는 조그맣고 아름다운시에 상 타멜 (Saint Armel) 이라는 마을 을 걸어가며 찍은 구름사진이다. 나는 이곳을 걷는것을 좋아한다. 지난 여름엔 샤토 수시니오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다오고 가을엔 여기를 걷기위해 자주 찾아갔다. 그러나 겨울엔 통 나가지않았다. 내게 겨울은 안으로 웅크러드는 계절이다. 웅녀의 피가흐르니까 그런가보다.

이곳에서 좋은점은 바다를 끼고 많은 자연의 산책로가 있고 바다운동을 싸고도 쉽게 안전하게 접할수있다는것이다. 자유란 내안에서 내가만든 족쇄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얻어지는것이라는 깨달음이 내게 왔다. 이제 내가 더이상 떠돌아다녀야할 이유가 없어져버렸다. 새로운 그림이 시작되었고 한달정도 또 열심히 해보고싶다. 사람들에게 휘둘리지않고 살수있다는것은 외롭다는게 아니고 정신수양을 위한 축복의 시간들이다. 내안을 뒤집어들여다보는 반복적인 시간들이 내게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속에끼어살게되면 다시 흔들리지않을수는 없다는것을 알지만 이세상이라는곳은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생명들과 함께 어울릴수있어야하는곳이기때문에 내가 배운것을 증명하는 시험장인것이다. 그속에서도 내안을 자유롭게 넘나들수있다면 내가 원하는것을 이룬것이다.

이 그림은 모든 족쇄의 열쇠는 결국 내안에 있었다는것을 그린것이다. 둥그런것들은 연, 업, 채인들을 생각해 조금 복잡하면서도 멀고먼길을 찾아헤매는 마음에 아름다움이 연결되어있었다는것을 표현하고싶었다.


11.10.2017

프랑스 북쪽 시골 에서 살아본 이야기.




올해 8월 내 컴퓨터가 죽어버리면서 잃어버린 사진들을 오늘 운좋게 몇개찾아왔다. 내가 수도승처럼 빵집하나없는 놀망디시골 에 살았을때 찍은 사진들중 몇개를 이곳에 실어보자한다. 내가 살았던곳은 표지판도 없어서 우체부들이 잘 찾지도못하는곳이였다. 처음 파리에 와서살때 레스토랑에서 3개월 일한적이 있는데 그때만난 친구 '쟌'이 자기남자친구와 허물어져가는집을 한채 사서 보수공사를 해서 1층을 세주었는데 마치 각본에 짜여진것처럼 첫번째 타자로 내가 이곳으로 오게된것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오른쪽 큰문 과 그옆 작은 창문이 내집이였고 나머지는 전부 친구부부들것이다. 내가 살던곳은 원래 동물들을 가두어두는 외양간이였지만 그럴듯하게 공사를해서 나같이 멍청한 예술가가 살기엔 괜챦은곳이였다.  다만 그곳이 북쪽으로 놓여져있고 천장이 높아 나는 그곳에서 늘 추위에 떨어야했다. 10개월 춥고 2 개월 따뜻.

이곳은 Bissieres '비시에' 라고 불리는 작은마을로 20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살고 또 상업적인것은 담배가게 하나없는... 소들과 말들이 살고있는 말 그대로 시골촌 이였다. 나는 그곳에서 내나이 46세 부터 정확하게 4년반을 살다가 나왔다. 만약누군가 내게 거기서 뭐했냐고 묻는다면 도를 닦았다고 말하고싶다. 왜 프랑스에서 이런 시골에 가서 살았냐고 묻는다면 난 이것이 내 선택이면서 운명이였다고 밖에는 표현하기힘들다. 내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기간이 정말 필요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늘상 산책하던, 집을 나오면 걷게되는 길에는 큰나무가 두개 있었고, 길이름은 rue lion d'or  '황금의 사자' 였다. 나는 여름내내 이곳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탔다. 주변의 벼들이 가을쯤 황금색으로 물들면 바람과 함께 출렁되던그곳은 내게 바다였다. 근데 어느날 나무 하나가 사라졌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다보니 내가 알고지내던 나무들이 그렇게 싹둑 짤려나가 사라지는일들이 종종있었다. 나는 나무들과 친밀했기때문에 그들이 사라지면, 사람이 죽은것처럼 많이 슬프고 허전해서 그길걷는것을 힘들어했다.


친구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가끔 찾아오면 정원에서 피크닉을 했다. 친구남자가 현대무용을 하기때문에 모임은 자주 무용하는 '칸' Caen (30분 거리) 에 사는사람들이였다. 이곳에서 나는 나이가 어느정도 든 사람들은 모두 그룹으로 모여 함께있으면 화기애애 해보이지만 속에는 늘 많은 문제들이 둥둥 떠다닌다는것도 알게되었다. 인간들사는곳은 어디든 마찬가지인게 맞다. 국적이나 문화를 떠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복잡한데가 있다. 나는 사람들 만나는것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놀망디 정신세계와 잘 맞지못한것같다. 아마 이곳이 북쪽이고 독일과 가까와지는탓인지 보수적이고 마음이 닫혀있는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억된다. 또 지독한 인종차별주의들도 만나 정말 힘든 곤욕을 치르기도했다. 내게 칸은 안좋은 이미지로 남은것같다. 차갑고 추었던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래도 내친구 쟌이 있었다. 내 편이 되어주고 내가 필요할때 진정한 친구로 있어주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살지도 않았겠지만 그녀는 내게 소중한 한사람의 친구로 남아주었다. 사진에서 와인병을 머리에 든여자가 쟌이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고양이는 내 친구부부들이 키웠는데 집고양이 이면서 야생고양이다. 이사한 첫날부터 당당하게 방문해 코를골고 사지를 벌렁 뒤집어 잠자고 (처음봤다) 새벽엔 저렇게 아침이슬 맞으며 내 집앞에 찾아와 명상을 즐기고 밤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가 토끼나 어린새를 잡아먹고 누군가와 격렬한 격투를 해 피를 흘리며 돌아오는날이 자주있었던 이고양이는 아틸라 라고 부른다. 나는 정말 고양이에대한 의견이 없다. 어떨땐 좋고 어떨땐 싫다. 하지만 요물이란말이 왜 나왔는지는 이해가 간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얄밉다가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신기한 동물이 내겐 바로 고양이 다. 토끼들이 내집앞에 은신처를 마련했을때 아틸라가 몇번을 물어죽여 나는 아틸라와 전쟁을 했었다. 토끼를 살리기위해 나는 아틸라를 위협했고 그래서 우리사인 조금 멀어졌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늘 나를 찾았다. 거의 나만 있었기때문에.



사진들을 보면서 아, 이시간들이 모두 끝나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못나오고 그냥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집을 나오려는데 정말 막막했었다. 그동안 공짜로 주어졌던 모든 보호막들이 내게서 하나씩 사라졌다. 잘난척 아는척 떠들고 믿었던 신념도 에고도 나를 벗기고 또 벗겼다. 나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 받아들였다. 남겨진 잔여물이 지금도 내 발목을 잡고있기도하지만 나는 지금 그렇게 힘겹게 새로운 걸음걸이를 다시한번 하고있다. 이제 블로그로 남겼으니 사진들을 잃어도 이곳에서 다시볼수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어 그냥 근래 과거만 단순하게 들여다보는게 더 좋은것같다.

내가 떠나오고 6개월후 아틸라가 길에서 객사했다고한다. 그의 영혼에 평화를 빈다. 작은 인연 더 잘해주지못해 미안해...









11.05.2017

깊어가는 가을 그리고 고래꿈

일요일 이른저녁 산책을 나가려했더니 느닷없이 비와 함께 우박이 쏟아진다.  할수없이 목도리를 풀르고 책상앞에 앉아 이글을 쓴다.  얼마전 북한 영상을 미국사람이 찍은것을 보면서 사람이 태어나 진실을 알지못하고 산다는것은 그렇게 괴로운일은 아닌것같다 싶었다. 그들의 순박한 얼굴은 이세상 어디를 가도 볼수있는 그런 얼굴이였다. 다만 우리모두가 아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산다는것뿐이다. 자신들이 가진 인권을 유린당해도 그것이 생각보다 고통스럽지않은것은 잘못된 믿음덕분이다.  잘못이 아닌데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벌을 받는게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사실을 알게된다면 그리고 배움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면 고통은 더 가까이 올지도 모른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정신차리고 찾아야한는게 서양교육이다. 나는 한국에서 자랄때 내권리를 위해 나서기보다는 상대가 알아서 내권리를 찾아주는 교육을 받은것같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교육은 한국에서도 지난 정권들의 부패로 인해 바뀌고 있는것같다. 자신의 권리를 알지못하면 누릴수가 없다. 누가 찾아주지않는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사실을 알지못하고사는삶이 영원히 계속될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세상에는 인간이 만들지않은 법칙이 존재한다.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 즉, 사실은 밝혀지게된다. 어둠은 빛을 이겨내지못한다. 빛은 반듯이 오고야만다. 그래서 보고싶지않아도 봐야만하는때가 오면 그 누구도 막을수없다. 세월호 노래처럼 진실은 거짓을 이길수없다.



지금 우리가 전세계에 대한 의식 이 인터넷을 통해 높아졌다해도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나아진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있고 여전히 전쟁을 하고싶어하는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사실에는 눈을감고 문화나 가족들에 의해 조종된 삶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는 미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지식적인 사람이 되는것을 추구한다는 인식을 많이 받는다. 가장 수치스러워하는것중에 하나가 '무식한사람' 소리듣는것인것 같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과장된 감정표현 을 쓸데없이 두려워한다. 거기다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감정표현들은 부정적이미지를 확고히 심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이 추워지는 겨울 비가 내리고 어두운날이 많은 이곳에서 가끔 그들이 무식하다고 믿는 문화가 그리울때가 많다. 생각없이 웃고 떠들고 자신을 내려놓고 즐길줄아는 문화. 물론 마음맞는 친구들과 그렇게 즐길수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마음을 갖는사람들이 드물어진다고 느낀다. 내가 프랑스에서 느끼는것은 미국에서 또는 한국에서 느끼는것과 그리 다르지않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선진국이라고 해서 더 행복할수있는것은 아닌것같다. 물론 자유가 없는 북한이나 생활환경이 열악한 나라보다는 누리는것들이 많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사람이 사는곳은 거의 비슷한것같다.


꿈을 꾼다는것 그리고 환상을 갖는다는것이 꼭 나쁜것은 아니다. 나는 고래꿈을 꾼다. 깊은 바닷속 에서 태어나 이리저리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 가 움직임을 멈추었을때 들리는 그 숨소리... 그리고 그 소리가 말로 표현할수없는 침묵의 무게로 나를 삼키는 그런꿈.

북한사람들이 자유 와 독립을 배울떄 우리 한국은 함께 커다란꿈을 꿀수있지않을까? 인간은 신이 될수없다. 신은 인간을 구원하지않는다. 인간은 자신안에서 신을 만날수있고 스스로를 구원할수있는 힘을 얻을수있다. 하지만 모든것엔 때가 있고 인간이 할수있는일은 때가 왔을때 준비가 되어있어야하는것이다. 죽기전에 아버지 고향에 가볼수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대신 그땅을 밟아보고싶다.
나는 늘 혼자 운동을 해서 사진들이 없는데 이 사진 하나가 친구 엄마를 통해서 남았다. cascais비치에서 설핑을 끝내고 나오는 사진이다.

9.26.2017

바다, 프랑스 그리고 생활

이곳은 지금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작년 여름 8월 시작된 이곳생활은 놀망디에 비하면 집에 돌아온것같이 편안함이 있다. 물론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살았든 상관없이 난 늘외국인이다. 부자들이 은퇴후에 사는동네로 알려져있는만큼 종종 인종차별도 피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사람들이 열명중 에 세네명이라면 나는 그나머지 여섯,일곱명에게서 내삶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느나라에 살든지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 세명은 가난한사람들 깔보는 사람들이거나, 동성연애 는 죄라고 믿는사람들이거나 아무데나 침뱉는 사람들 이겠지 생각한다. 다만 외국인으로 다른나라에서 가족없이, 시민권없이 혼자산다는것은 때때로 내힘에 부딪힐때가 있다.

바다는 에너지를 만든다. 에너지가 낮을때 바다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알수있다. 바다는 차갑지만 신선하다. 그 신선함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 움직임의 물결이 내 온몸 세포구서구석 을 스칠때 느껴지는 따뜻한 차가움?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하는데 요즘 문득문득 한국의 산과 강이 그리울때가 있다. 보고싶고 느끼고싶다. 내가 마지막 한국에 다녀온게 2009년 겨울이였다. 8년동안 나는 한국을 보지못했다. 정체성을 잃는다는것은 다른 정체성이 생긴다는말이 될수도 있다. 나의 자식들은 미국인이고 부모는 한국인이고 친구들은 프랑스인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젤리같다. 이곳에 가면 이렇게되고 저곳에 가면 저렇게 되는 형태가 없는 젤리. 우리 모두 사실 다 그런건 아닐까? 나는 감수성은 원하지만 자기연민은 원하지않는다. 내가 강한사람이라는 소리를 종종듣는데 사실 나자신을 내가 볼때 나는 끝없이 연약하다고본다. 자기가 자신을 가장잘 알지않을까?

지난 낙마때 새로산 핼멧을 깨뜨리던 날부터 말타기를 중단했다. 말타기에 들어가는 돈으로 화장품들을 샀다. 갑자기 피부가 정신없이 조여와서이다. 그동안 내 피부나 몸이 다 공짜로 주어졌다면 지금부터는 아닌것같다. 물론 늙는다는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좀 예쁘게 늙고싶은건 역시 욕심일까? 생전처음 주름크림과 마스크들을 사기시작했다. 여름내내 설핑과 바다운동을 즐기던 50세가 넘은 내얼굴에 검은 버섯이 보이는것은 자연스런 현상일것이다. 그래도 그 행복의 시간들과 바꿀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5년간 놀망디생활이 나를 설핑이나 운동에서 멀어지게했기때문에 이번 여름엔 바다에서 수영하는것으로 만족했고, 이번겨울 몸에 근육을 만들어 내년여름엔 다시한번 설핑을 하고싶다는 계획이 있다. 말타기는 기본적인 돈이 들지만 설핑은 공짜다. 또 나이가 들면서 운동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것도 알게되었다. 늙는다는것은 내 몸안에 많은 변화 가 이는것이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맞추어가는것이 필요하다. 나는 젤리 일뿐이다. 환경과 변화에 맞추어가면 된다.

나는 작은 마을에 살고있고 주변 작은 마을 을 구경하는것도 좋아한다. 다 비숫비슷해보이지만 작은 마을엔 늘 평화로움이 내살을 만지는 그느낌이 좋다. 크고 멋진 대도시도 좋지만 자연과 가까운 작은 마을이 마음을 더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서울에서 태어나 늘 큰도시에서 살았었지만 4년반 놀망디 시골과 곧 8년째로 접어드는 브리타니생활, 사람들보다는 바다에 의존하는 내마음이다. 프랑스에 대한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많았고 현실에 부딪힐때마다 이곳을 떠날수있다면 좋겠다는생각을 하곤한다. 사실 이곳에 가족이 없는만큼 나는 어디든 갈수있다. 하지만 이곳 친구들과 깊어진 우정들이 있고 혼자 라는 자유가 이나라 문화 와 이어져 내게 영감을 주어왔다 .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내게는 전에 없던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내 그림 프린트 샵이 활발히 움직이게하는것이다. 어렵다. 하지만 포기 안한다.


1.12.2017

새해 새마음




낮에 내내 바람불고 비가 내리는 날이였는데 지금은 비는 멈추고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어두움이 짙어지고있다. 나는 결국 스마트 폰을 3일전 배송받았다. 10년만에 바꾼 내 전화기 그리고 처음 스마트폰.  모두들 엄청나게 신나할때 나는 필요없다고 거부했지만 갑자기 필요한것처럼 느껴지기시작했다. 그래서 4달 할부로 샀다.

자신을 팔아야하는 요즈음시대 나는 반은 팔고 반은 필사적으로 움켜지려는 마음을 가지고있다. 예술을 한다면서 세상에 유리한데로 끌려다닌다면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수없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내 비지니스가 안된다면 그건 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예술과 비지니스가 함께 하지않는 원리때문이고, 하늘의 뜻이 내뜻과 다르기때문이기도 하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람... 모두 재미있는 도구들이다. 이제 내가 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수있을지 두고볼일이다. 더이상 모르는곳을 차운전할때 정신없이 헤메지 않아도 된다는건 꽤기쁜일인지도 모른다.

최순실딸과 어떤 부자집 아드님께서 승마 에 먹칠을 해버렸다. 나도 승마를 2년째 아니 이제 3년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어릴때부터 많은 아이들이 승마나 보트타는것을 배운다. 우선 나는 가죽이 아니어서 찢어지기시작한 승마부츠를 신고있으며 하루에 1시간 모든장비 (말포함)까지 16유로이다. 작년 겨울에 바지하나 샀고 이번크리스마스때 처음 헬멧을 샀으며 다른장비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말채찍을 거부한다 그래서 어떤 선생들과는 정신적으로 부딪이기도했다. 배우는 입장이지만 나에겐 나만의 철학이 있다.일주일에 한번 하지만 겨울엔 조금 들하고 여름엔 조금 더한다. 말을 타는것보다도 관계를 배운다는게 나는 참좋다. 그들을 만져주고 닦아주고 늘 사과몇개준비해서 고마운마음으로 먹여주고... 예전엔 썰핑을 좋아해서 자주 바다에 갔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사를 다니다가 썰핑과는 멀어져버렸다. 썰핑도 보드하나선물받았었는데 지난 놀망디집에 두고와서 언젠가찾아올수있다면 다시시작해보고싶다. 하여간 나는 예전엔 막연하게 말을 좋아했다면 지금은 말똥냄새에 뒤섞여 정말 말을 좋아하게되었다.



나는 새해들어 아직 그림을 그리지못하고있다.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새로운에너지가 생겨날것이기때문에 그 비움이라는 과정에 둘러싸여있다. 한편으론 괴롭고 한편으론 너무 평온하다. 마음이란 너무도 알수없는 그리고 끝이 보이지않는 곳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한국에 평민들이 모두 행복할수있는 민주주의가 깊이 잘 자리잡게되기를 정말 바란다. 또 한해가 시작되었다.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왜인지 잘이해해서 거기에 맞게 시간을 잘 써야겠다...




11.10.2016

브리타니 그리고 반 (마을 이름)

날씨가 많이 싸늘해지고있다. 나는 어제 친구의 보트를 부두위로 데려오는일을 도왔다. 내가 사는 '골프드몰비엉 (Gulf de Morbihan)'은 참 아름다운곳이다. 평온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바라보는 골프드몰비엉은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며 그모습을 드러내고있었다. 3시간 항해하는동안 손과 발이 꽁꽁 얼었다. 이제 이 작은 보트는 내년4월이 오기까지 부두에서 쉬는동안 친구부부는 이것저것손보느라 울 주말마다 또 바쁘겠다. 하나의 운동을 정해놓고 한다는건 인생을 거기에 바치는것과 다를게없는것같다. 돛을 달아 배를 타며 바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곳에 아주 많이산다. 그 모든 과정이 거칠기도하고 힘들기도하지만 그만큼 얻어지는 즐거움에 빠져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사는곳이 바로 여기다. 좋아하는 일에 정열을 쏟으니 당연히 행복지수가 높은게 아닐까? 이곳 브리타니사람들은 보통프랑스 사람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내가 사는곳은 마을까지 빠르게걸어서 15분정도 걸리는데 비포장도로와 언덕을 지나기때문에 숨을 헐덕거리게된다. 프랑스사람들은 길을 걸으며눈이마추져지는 사람들과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꼭한다. 캘리포니아사람들이 조금더 크게웃으며 인사한다면 이곳사람들은 조용하지만 더깊이있게 사람들을 관찰하는것같다. 나도 늘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것을 좋아한다. 누구를 만나든 그사람에게 웃을준비가 되어있다는것을 보여준다. 그러고보니 한국에있을때는 사람을 가려서 말을 섞었던 기억이 있다. 이상한 사람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무시하거나 했던것같다. 이곳 유럽에서는 아주 지저분한 거지가 다가와도 다정히 말을 받아주는게 정상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도울수있는지 없는지 판단한다.




이곳 마을 이름은 반(Vannes) 이다.  이 마을은 주로
은퇴하고 살러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져있다.
수요일 과 토요일 아침엔 시장이들어서고 이 마을엔
늘 유럽에서오는 관광객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특별하게유명한게 있는것은 아니여서 동양인들은
거의 보이지않는것같다. 또 단체로 오기엔
너무 좁은 마을이다. 차가 있다면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책로가 많아 여름엔 파리사람들이
조용한바캉스를 보내기위해 오고 연이은 전통적행사들도 볼만한게많다.
나는 언젠가부터 브리타니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있다.
왜인지는 다음에 다시 글을 쓰게되길.





무엇인가를 상대에게 바라는사람은 그 마음에 순수함을 가질수없고
무엇인가를 상대에게 기대하는사람은 그 삶이 단단할수없다.
기대가 무너졌을때 상대를 비난하는사람은 어리석다.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 처음부터 생겨난 결과인것을 알지못하기때문이다.
처음을 보지못하는사람이 어떻게 끝을 이해할수있을까..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바라지않고 산다는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늘 자신을 바라보면 시끄러운세상 조그만 한곳에 나의불이켜진다.
그러면 내주변이 아주 조금 환해진다. 더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나를 연구하고 바라보기에도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게느껴진다.

9.25.2016

사물놀이 디자인


말이 난동을 피운다면 분명 말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것이다. 말음 무척 민감한동물이다. 뉴스끝에 양산으로 눈을 찔렸다고 하던데  그가 안정 할때까지 기다려주거나 숙련된 자가 차분히다루어주거나, 또는 먹을것을 통에담아 유인해내는것도 한방법이다. 말은 사람에게 덤비는 멧돼지나 곰종류가 아니니 마취총으로 쏘는일은 없어야할텐데 하고 생각해보았다. 날씨가 너무좋아서 집에있는게 죄가되는기분이다.  

한국을 소재로한 디자인 몇개더해보고나서 내가 살고있는 브리타니 에 대해서도 시도해보고싶다. 한복의 역사를 찾아보니 흥미로운사진들이 몇개있었다. 해보고싶은게 많아서 이 짧은 인생이 빠르게가는것은 좋은것일까? 전통적인것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서 디자인으로 마무리해보았다.  확실히 디지탈칼라를 쓰니까 화려하고 눈에 뛴다. 그래도 나는 가는선으로 그리는 그냥 오리지날 펜드로잉을  참 좋아한다. 내가 그리고는 나혼자 너무좋아서 보고 또 본다. 깨끗하고 복잡하지않고 헷갈리지않는, 가녀리면서도 힘의 조화를 갖고있는게 느껴진다. 그 선이 내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문양을 복잡하게넣으면 더두드러지지만 본래의 선의 아름다움을 잃고만다. 사람이 사는것은 모두 우리마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9.22.2016

가을 전통춤 이미지 디자인

이마을(Vannes)에 이사하고나서 행복은 상대적인것인가하는질문을 던져보게된다. 지난 시골생활은 너무 춥고 사람이없는장소여서 일하는데는 성공적이였으나 내가가진 성격을 가두는 격이되어버렸다. 유럽의 차가운맛을 지독히느끼게하는 곳이기도 했다. 한마디한마디가조심스럽고 행동하나하나가 불편했고 그곳에 사는 많은이가 정신병을 가지고있다고해도좋을만큼 유쾌한곳이 아니였다. 하지만 다시 Bretagne 으로돌아오니 지난배움을 벗고 나라는 캐랙터근처로 돌아오는것같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행복함이 느껴지는건 지나온 어려움과 비교가 되기때문인가보다.. 마치 이세상에서 혼자 행복의 바람을 타고 있는기분이다. 금방이라도 고장날거같은 차를 타고 당장 발코니탁자살돈도없고 미래에대한 계획이라든지 방향도 모른다. 이 모르는상태속에 나는 나를 놔둔다. 불안함이 오면 오는것을 느껴 달래고, 걱정이생기면 그때그때 거기에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나가고 그리고 하루를 느끼며 그림을 그릴수있으면 그린다. 감정은 바람과같은것인데 기억이 사라지면 나라고믿던 나자신도 사라진다. 바로 거기에 남는것을 느끼려고 한다. 



Youtube 에서 한국에 신기한 이동식집들에 대한 화면을 보았다. 리모콘으로 집을 움직이는 정말 신기하고 멋진 기술... 근데 그 리모콘을 보면서 나는 생각하게된다. 왜 디자인에 전혀 신경을 안쓰는것일까?  그러고보니 어느인터넷 기사에서 삼성이 디자인에서 밀린다는말도 들은것같다. 왜 한국인들은 디자인에 타고난관심이 없는것일까... 이질문을 나는 어린시절부터 일본이나 다른나라 제품들을 보면서 가지고있었다. 그이유가 어디에 있는걸까? 그러다가 디자인 이라는 단어가 내게 다가왔다.

내가 그리는 간단한 그림들은 디자인과 관련이 있다는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그림들이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이름안에 있는것을 원하지않는다. 왜냐하면 내그림들은 상상의 날개속에 펴진 아름답고 멋들어진 스토리가 아니다. 짧게, 순간에 멈쳐진 현대식 간결문이다. 어떤 긴사연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러스트레이션과는 다르다고 말하고싶다. 나는 그림을 그릴때 내손이 외우고있는 선을 외면하고 새로운 작은 디테일에 정성을 들인다. 모델의 발목이 다른 이와 다르다든지 목이 길다든지...
아무이름도 얼굴도 의미도 없는 사람을 그려도 선택한 모델에 충실한것은 순수미술에대한 마음에서 온것이기도하지만 그 성실한 디테일은 현대를사는 내마음처럼 간결해야한다. 늘어진 감정없이 신선하고 깨끗해야한다. 그 간결함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기도 하다. 이 상점에 있는 그림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내안에서생겨나는 드로잉들이다. 팔기위해시작했지만 결국 내안에서 연결고리를 물고 나올수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모른다고해도 우리가 하는 모든행동속에는 우리의 마음이 열이면 열 다보여지게되어있다. 자연은 깊이를 알수없는 섬세한 정확성을 지니고있다. 우리의 존재도 마음도 모두 자연에 한부분이다. 전생의 가능성을 맞다고생각하는 나는 그모든삶에서 시작부터끝까지 한점의여지가 없이 모든내가보이는 어느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 내가 밥을먹을때 걸을때 말할때... 그모든행동에 대한 이유들이 명백히보이는 그공간이 신의 자리이든 내가 상상할수없는 어느곳이든 나의 마음은 그곳을 바라본다.



8.23.2016

그림을 그린다는것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건 나의 내면의 세계에 몰입한다는뜻이다. 그림을 그린다는건 정신속에서 갈라져 있는 욕심과 양심의 세계에서 양심의 세계로 몰입하는것을 말하고 곰팡이처럼 파고드는 욕심에 의한 물질세계를 걸러내는것을 말한다. 삶이 발란스를 갖기위해선 내가 가진 이 두세계를 잘바라보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과정에서 깨어있어야한다. 그림은 내가 그곳을 잘 바라 볼수있도록 나를 인도해준다. 요즘 나는 펜드로잉을 계속하고있다. 날씨가 너무 덥고 마음이 잡히지않는시기에는 펜드로잉이 내마음을 조금이라도 맑아질수있게 도와준다.

이 그림을 그릴때 자신에대한 이기심 (편안함 과 즐거움에 안착하고싶어하는 마음에 얽혀있는 오래된 습성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고싶어하는 마음은 시선과 다리가 출구를 향하고있는것으로 표현했다. 그것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은 좀더깊은 이해를 향해 나아가고있다는뜻이다. 하지만 출구는 좁혀 어려움을 나타내고싶었다.

집에서 45분떨어진 La Gacilly 라는 작은마을에서 일년에 한번씩 사진전시가 열린다. 올해 나는 처음 친구덕분에 가봤는데 마침 주제가 일본 과 바다 였다. 많은 일본인들의 자기나라역사를 40년대부터 현대까지 보여주는 사진들이 많았고 한명의 한국작가가 찍은 인도 사진들도 볼수있었다.  마다가스카 의 웅장한 자연과 가난의 실체도 아름다왔고 중국인들의 불법어선사진들과 설명도 읽을수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Olivier Jobard 의 사진들이 인상적이였다. 처절하고 절망적인 이민자들의 상황속에서 뽑아낸 아름다움... 어떻게 그속에 아름다움이 존재할까? 그 작가가 만든것은 환상일까?

빅터 휴고의 구절 " 우리는  진실의 한쪽만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다른진실의 한쪽은 깜깜한 무지속으로 가라앉게되고 그로인해 가려진 원인을 알수없는 인간은 고통받는다. 그가 볼수있는것은 오로지 짧은 시야안에 허탈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들뿐이다."

Nous ne voyons jamais qu'un seul côté des choses; L'autre plonge en la nuit d'un mystère effrayant; L'homme subit l'effet sans connaître les causes; Tout ce qu'il voit est court, inutile et fuyant.

감정적으로 쉽게움직이는 사람들은 바로 진실의 한쪽만을 보기때문이다. 자신의 아픔만을 바라보는사람들은 전쟁밖에는 할수없었던 20세기전 사람들이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있으며 이제 양쪽을 다 볼수있는 사람들로 살아야한다.

8.09.2016

의식 과 그림

삶안에는 많은 구멍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보지않고 건너뛰며 사는사람들이 참많다. 그렇게 뛰어다니는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수가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 많은 구멍들을 하나하나 서투르게 채워보려애쓰면서 반복되는 실패를 겪고 소용없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들면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수밖에없는 그'의미' 가 행복이되어버린다. 마치 알면알수록 모르는게 더커지는 기쁨...  가면갈수록 갈길이 먼기쁨?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작은 아이에불과하다는 즐거움. 내가 말하는 구멍들이란 삶속에서 나를 바라봐야만 보여지는 문제점들 같은것이다.

나의 의식속에는 현재 변하고싶어하는나와 변하지못하는나 그리고 이미변해버린내가 어울려있다. 그래서 이러한 나의 의식을 품고, 이사를 온후 새로시작하려고 앉아있는 책상앞에서 깊은망설임안에 서성거리는것이다. 친구가 선물로준 오구스트 로댕의 예술에대한생각을 적은책을 며칠 가까이 읽고있다. 묘하게 아름다움과 예술에대한 확신을 말하는 대목중 지금 내마음과 유사한글들이 많아 가슴에와닿았다. 역시 로댕은 사람이가진 Inner flame (가슴속 불꽃?) 의 아름다움을 가장중요하게본다. 프랑스에서 또는 미국 이나 한국에서 정말 아름다운외모를 가지고 형편없는짓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어떻게하면 사람들의 속을 볼수있을까 하는의문을 가진적이 많았었다.

자신이 깊이 의문을 가지면 언젠가 답은 도착한다. 깊이 의문을 갖지않으면 어떤답도 오지않는게 정답이다. 안에있는 것을 그리는데 겉에보이는 형태를 사용한다. 그형태가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그 느낌이 내안에 있는것과 일치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내가 내안을 잘바라봐야하며 내머리속을 굴러다니는 생각들을 치워야한다.... 궁금하다 내가 그릴 그림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닐지, 일어났는데 그변화가 너무 미세해서 모를지.... ....궁금하다.
이그림은 2014년것이다.

6.01.2016

동물에 대한 마음



놀망디 에 살면서 거미들을 수도없이 만났읍니다. 어떤때는 내 바지안에서 어떤때는 내 머리에서 코밑으로 어떤때는 침대안에서 또 어떤때는 내 목욕물안에서... 어느날 제가 의문을 갖게된건 그 자그마한 벌레를 생긴것때문에 싫어해서 죽이는데 그 과정에서 저는 괴이한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벌벌떠는겁니다. 왜? 죽이는건 난데... 또 제가 자는동안 그가 제몸위를 기어다닐때 저는 모른다는거죠. 어이가 없음에도 저는 그작은벌레를 무서워합니다. 가해자는 사실 저인데도 말이죠. 그사실을 인식한후로는 시간적, 공간적인 여유가 있는한 죽이지않으려 노력합니다.

말타기를 하면서 육식을 하지않기로 결심하게된건 바로 동물들에 대한 인식이 생겼기때문입니다. 이곳을 걷다보면 늘 가축들을 지나게되는데 저는 그들에게 말을건네거나 그들이 다가오면 쓰다듬으며 직접적으로 따뜻함을 체험합니다. 그들이 인간들의 이익을위해 얼마나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아야하고 또 우리의 뱃속을 채우기위해 동물들이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찍은 영상을 본적이 있읍니다. 그 잔임함을 잊을수없읍니다. 동물들은 우리와 같이 이세상에 태어나지만 거의모두 인간의 노예가 되어 있는셈이지요.

저는 작년부터 말타기를 1년넘게 배웠읍니다. 놀망디에서 가장 싸고 흔한 운동입니다. 집근처에만 세네 곳이 있어서 옮겨다니며 배웠는데 가장 가슴깊이 배운것이 동물에대한 애정인거 같습니다. 말타기는 스포츠일까요?  널판지를 이용하는 설핑같은 운동과 비교해볼때 제 마음이 다릅니다. 말은 살아숨쉬는 생명이니까요. 말타기는 늘 조심해야하는것같습니다. 운전하는것과 비교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말은 자동차와는 또 다릅니다. 싫어하기도하고 놀라기도하고 피곤해하기도합니다.성격도 모두 달라서 신중하고 깊이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실 말타기는 말똥 치우기부터 시작해야하는것같습니다. 말들은 정말 거대한 크기의 똥을 하루에 2번 이상 보는것같습니다. 그똥들을 치우면서 그들을 알아가면서 내 차안에 그들 똥냄새가 베이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말타기를 하고있구나...

말들은 그 온기가 참 따뜻해서 어루만지는것만으로도 따뜻한 온정이 느껴집니다. 어린아이들이 동물을 만지는것은 사랑을 배우는데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가난 말들은 고집불통 이지만 저는 그들이 생각이 꽤 깊다는것도 느꼈습니다. 팔레오 라는 에너지넘치는말이 있었는데 정말 반항이 강한 말중 하나였습니다. 한날 그말이 힘들게 고전분투를 부리고 있었을때 제가 가까이 가다가 그만 그머리에 제얼굴을 부딪혔는데 별이 핑글핑글 돌아 그대로 얼굴을 몇분감싸안고있을때, 팔레오 눈빛을 봤습니다. 분명히 미안해하는 눈빛이 내게 보였습니다. 말을 할수없는 동물들은 거의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이해하려하는사람만 이해할수있게되지요.

우리모두는 생각을 깊게하는것을 원하지않는것같습니다. 맛있게 고기를 먹는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믿으니까 죄책감느끼지말자 하고생각하는것은 사실 완전한 진실은 아닙니다. 그 동물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문화를 만들어왔는지 알게됩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생선을 먹습니다. 그럼 생선은 괜챦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생각들은 생선을 가끔씩 먹는것에대한 죄책감을 견뎌낼수있기때문에 거기까지 합니다. 사실 어디에 경계를 둘지 그것은 자기자신이 결정하면 됩니다. 단지 생각없이 맛있는것만 찾아 먹는것은 생각이 필요하지않을까 하는마음입니다. 그렇게 맛있는것만 밝히며 살면 우리가 죽을때 행복할까요?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먹는 음식이 엄청난 정신적고통을 맞아 죽여진 동물들이라면 과연 그것들이 우리몸에 유익할까요? 그 잔인함이 우리인생에 어떤 미세한 영향으로 남아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해본다면 좋겠습니다.

저같은경우 친구들을 위해 음식을 해야하거나 초대를 받았을때는 고기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적게마나 성의를 생각해서 먹기도 합니다. 무엇이 옳고그른가 보다는 상황에 따른 배려가 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때문이긴하지만 제게 허락되는상황에서는 동물들을 먹으려고 죽이는사람들을 돕고싶지않은 강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세대들은 이제 전통적틀에서 벗어나 새로운길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